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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생 2막 캄캄한 이에게 등불 켜주려 일찍 퇴직했죠"
    자유로운 글 2023. 2. 22. 06:45
    회사 수익만 추구하는 게 아닌
    고객 미래 진정으로 돕고 싶어
    퇴직자 재무설계 지원 매달려

    경남은행 입사 후 팀 신설 주도
    고맙다는 상담자들 보며 보람
    더 많은 사람 도와주려 명퇴
    여러 기관·기업서 교육·조언

    "개개인들에 맞춤 금융 집사
    지역은행이 꼭 해야할 역할"

    한국 사회는 퇴직 이후가 두려운 곳이다. 매달 통장에 꽂히던 월급의 부재, 목표 의식 상실 등은 인생 이모작을 시작하는 데 큰 걸림돌이다. 반면, 현실 걱정에 미뤄뒀던 오랜 꿈을 찾아 떠나는 사람도 있다. 지난해 경남은행을 떠난 퇴직 금융인 이야기다. '적절한 현금 흐름을 바탕으로 퇴직 후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는 것.' 그가 본인 인생에서 증명하려는 일이기도 하고, 그동안 쌓은 금융 지식을 나눠 더 많은 사람과 함께 걷고 싶은 길이기도 하다.

    ◇한 퇴직 금융인의 인생 2막 = "우리 사회는 '은퇴'와 '퇴직'이라는 용어를 구분하지 않아요. 사전을 보면 은퇴는 더는 경제적 활동하지 않는 상태, 퇴직은 주된 일자리를 그만두고 나온 상태를 뜻하거든요. 그러니까 정년을 맞았거나 명예퇴직을 하고 나온 사람들은 퇴직자이지, 은퇴자가 아니에요. 아직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회는 뒷방 늙은이 취급을 하죠. 본인만의 시간을 두고 계획하는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사회가 제대로 돕지 못하고 있어요."

    지난 14일 창원시 성산구 한 카페에서 만난 김창수(52) 전 경남은행 은퇴금융팀장의 첫 마디다. 그는 2019년 경남은행에 신설된 은퇴금융팀을 이끌었고, <경남도민일보>에 2년 동안 3주 간격으로 '단디 100세' 칼럼을 써온 퇴직자 재무설계전문가다. 지난해 정년을 3년 앞두고 명예퇴직을 신청한 이유는 그가 쌓은 금융 지식을 좀 더 자유롭고 넓게, 낮은 곳에서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껏 고객에게 퇴직 재무 설계를 해줬던 것처럼, 김 전 팀장도 인생 2막을 위한 현금 흐름을 조금씩 준비해왔다. 퇴직 후 많은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할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김 전 팀장은 현재 경남경총 인생2모작지원센터,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 울산퇴직자지원센터 퇴직재무설계 강사직을 계속 유지하면서, 공무원연금공단 퇴직공무원 재무설계 강사직에도 위촉됐다. 민간 기업에서도 할 일이 있다. 고령자고용법이 개정되면서 2000년 하반기부터 노동자 1000명 이상 고용 기업은 50대 이상 비자발적 이직예정자에게 재취업서비스를 제공해야 해서다. 칼럼을 블로그에 잘 모아뒀더니, 여러 민간 컨설팅 기업이 이를 보고 제안해 오고 있다.

    지난 1월에는 세종시 서민금융진흥원 위촉직 세 분야에 응모해 모두 합격했다. 취약계층 금융강사·신용부채 상담컨설턴트·자산형성 컨설턴트 등이다. 퇴직금융 분야뿐 아니라, 채무불이행·채무과다자·저신용자·고령자·청소년·북한이탈주민 등 상황과 계층을 넘나들며 금융 지식을 나눌 수 있게 됐다. 갑자기 열악해진 경제 상황에 불안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내일이 기대되는 하루하루다.

    ◇공포 자극 아닌 '꿈' 찾아주는 재무설계 = 김 전 팀장이 사회에 금융 지식을 나누겠다는 꿈을 지닌 건 오래전이다. 그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한 보험회사에 사무직으로 입사해 지점장까지 올랐지만, 가치관에 혼란을 겪었다. 회사가 '노후 자금이 10억 원은 있어야 하는데 저축으로는 절대 만들 수 없다'는 공포 마케팅으로 변액 보험 상품을 팔았기 때문이다. 당시 김 전 팀장은 직원들에게 이 상품 판매 교육을 하라는 회사 지시에 불응했다. 2003년 국제공인재무상담사(CFP)를 취득한 눈으로 상품을 보니, 고객 미래가 아니라 회사 수익만을 좇는 위험한 상품이어서다. 

    회사를 박차고 나와 들어간 곳이 '포도에셋(현 포도재무설계)'이라는 회사다. 이곳 라의형 대표는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간부 출신인데, 김 전 팀장과 비슷한 고민을 했다. 당시 현대차에 자유로이 출입하던 보험 영업사원들이 한 달 보험료가 몇십만 원 하는 종신보험 상품들을 마구 팔아댔는데, 큰 손해를 입은 노동자들이 많았다. 라 대표는 노동자 재무설계를 해 줄 곳을 찾다 아예 직접 회사를 차렸고, 김 전 팀장도 이러한 이상에 동감해 2004년 합류해 일했다. 

    "소중한 경험이었어요. 먼저 개인 노동자들의 모든 현금 흐름 자료와 그동안 가입한 연금·보험 등 금융상품 정보를 모두 받았고, 노동자들이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들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재무설계를 체계적으로 해 주는 일을 2년 동안 했죠. 하지만, 그때는 이상만 너무 높았는지, 회사 수익 기반도 약했고, 제 수입도 얼마 안 됐었죠."

    아쉬움을 뒤로하고 경남은행에 들어간 지 10여 년, 김 전 팀장은 접어 뒀던 꿈의 실마리를 잡았다. 2019년 7월 퇴직자 재무설계·상담을 도맡는 '은퇴금융팀'을 만들어 팀장까지 맡은 것이다. 수익 문제로 시중은행에서 선뜻 시도하지 못한 도전이었고, 생각지 못했던 기회였다. 당시 WM(자산관리) 고객본부장을 맡은 이정원 상무 도움이 컸다. 은퇴금융팀은 퇴직자 재무설계 지식을 강의 형식으로 제공하다 영업점에 전담 창구를 마련했다. 지난해부터는 상담전문가 326명을 전 영업점에 배치하는 성과를 거뒀다. '고객을 바라보는 재무 설계'라는 자아실현을 얼떨결에 이루게 됐지만, 그 덕에 이제는 더 넓고, 더 낮은 곳에서 경험을 나눌 용기를 얻었다.

    김창수 전 경남은행 은퇴금융팀장은 지난해 연말 퇴직했다. /이창우 기자

    ◇단순 사회공헌 아니라 은행 미래 = "은퇴금융팀을 처음 만들 때 다양한 곳에서 진행하는 퇴직 예정자 교육을 사전 답사했어요. 저 말고는 다 정년퇴직을 앞둔 50대 후반 분들이셨는데, 모두 '교육받는데 돈이 아깝다' '내가 알고 싶은 건 금융 상품 교육이나 이력서 쓰는 법이 아니다'라고 토로하시더군요. 퇴직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부분은 ' 퇴직금을 어떻게 받는지' '평생 모은 게 집 하나인데 이걸로 어떻게 먹고살지' 등 현실적인 부분이었죠."

    김 전 팀장은 직장생활 30년 넘게 한 사람들은 공적 연금 체계에서도 일정한 현금 흐름이 발생하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주택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을 적절히 이용하면 되고, 이를 돕는 일이 사회와 금융권 역할이라고 말했다. 필요한 생활비가 500만 원인데, 연금 300만 원을 받는 사람은 적극 일자리를 찾아야겠지만, 그 차이가 적은 사람은 돈보다 삶의 의미를 찾는 일을 해도 괜찮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경남은행 은퇴금융팀 방향이 정해졌다. 

    처음에는 철저한 사회공헌 성격의 서비스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만도 않았다. 김 전 팀장은 한 중견기업 퇴직자가 "너무 어두웠던 미래가 밝아졌다"라며 퇴직연금 가입 계좌를 경남은행으로 옮겨주었던 일을 떠올렸다. 단지 시간이 걸릴 뿐 앞으로 은행권이, 특히 지역은행이 관심을 두고 해야 할 역할이라고 확신하게 된 계기였다. 그는 1958년생 전후를 베이비붐 세대로, 1974년생까지도 2차 베이비붐 세대로 본다면 아직 최소 20년 정도는 이들을 향한 퇴직 금융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퇴직을 넘어 진정한 은퇴로 나아가는 길에도 이에 맞는 상담이 필요하다.

    "앞으로는 은행들이 고유 서비스 영역을 벗어난 기능을 많이 할수록 점점 지역민들에게 사랑받을 거라 생각해요. 현재도 각 시중은행은 비이자수익을 얻고자 VIP 고객에게 상속·부동산·건강 설계, 심지어는 자녀 맞선 서비스까지 해주는 '금융 집사' 역할을 하고 있는데, 더 많은 고객에게 확대해야 합니다. 심지어 일본 히로시마은행이라는 지역 은행은 내방 고객 치매 징후를 발견하고, 상품을 쉽게 설명하는 등의 직원 교육을 합니다. 단순히 입출금, 예금·대출하는 곳이 아니라 비금융 서비스를 아울러 제공할 수 있게 되면, 점점 줄어가는 지역 점포 필요성도 더욱 높아지겠죠." 

    출처: 경남도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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